프리텍스트 국어
음정마을 가는 길 본문
우리가 직접 주인되어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뿐, 지나버린 과거나 오지 않는 미래 때문에 고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성삼재에서 출발해 삼도봉에 오르기까지는 그런대로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산행이 진행될수록 현재를 즐길 수 없었다. 이미 몸은 지칠대로 지쳤는데 연하천 대피소는 멀기만 했고 미끄러운 바위 너덜을 내려갈 때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서인지 산새소리도 매미소리도 없었다. 지리산에 산새와 매미가 없을 까닭이 없다. 눈앞에는 또 시야를 막아서는 가파른 오르막 길이 귀도 막아서이리라
성삼재에서 천왕봉 대원사에 이르는 종주를 포기하고 벽소령 대피소에 주져앉아 버렸다. 즐기러 온 산행이 오직 고행이기만 하다고 생각해서 였다. 그렇다고 체력에대한 신뢰가 약화하는 것도 아닐 테고 큰 갈등없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새벽 다섯시가 다 되었으니 저달이 아마 그믐달이리라. 라면에다 밥을 넣어 팔팔 끓여. 아침을 먹고 음정마을 가는 길로 내려 섰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법. 어제의 험한 등산로 때믄이리라. 발길에 채이는 투박한 돌맹이가 아무렇게나 깔린 길이 이다지도 편안하고 한가로울 수 없었다.
매미소리도 들려오고 아름다운 새 소리도 들린다. 가슴을 펴고 한껏 이 아름다운 순간울 내 안으로 빨아들인다!
이 광활한 우주 지구별에서 한 구성원으로 이런 호사를 누리는 벅찬 감격을 온몸으로 느낀다. 세월이 지난 다음 아니 당장 내일이면 지금 이 순간으로 달려가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단 일초도 되돌릴 수 없다는 가르침을 새삼 감사하게 실감하며 이제 체력도 고갈되어 초라한 한 노인이
후적후적 잘도 걷는다.